[후기] 발레리나 서희 팬미팅

《 백조의 호수 (Swan Lake) - 파 드 트루아 》

reina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서희 씨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했던 댄서라서 더 그랬어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도 거의 없었고, 우리 나라에서 열린 공연에 출연한 적도 손에 꼽으니까요 (투르코 갈라에 출연이 예정되었다가 막판에 배소희씨로 교체되었던 것 같은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 그나마 아는 사실을 정리한다면, 로잔 콩쿠르에서 '카르멘'으로 호평받고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ABT에 입단한 무용수이며, 재작년에 UBC의 객원 주역으로 '호두' 에 출연했고, 작년부터 플로린 공주 같은 비중있는 역을 맡다가 올해 드디어 줄리엣으로 주역 데뷔를 했다. 딱 이 정도였어요. 하나 추가하면 지난번 ABT 내한 공연 때 허리 부상으로 인해 출연하지 못했다는 거?

발레 공연을 보러 다닌지는 몇 년쯤 되었지만, 동호회나 팬클럽 활동을 안 하다 보니 뻘쭘해서[...] 이 팬미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다행히 집 방향이 같은 reina님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D 얼떨결에 맨 앞에 앉아서 서희 씨의 실물을 보니, 정말 미인이시더군요 *-_-* 예전에 봤던 커튼콜이며 신문 기사, 잡지 사진들보다 훨씬 예쁜 분이었어요. 사진빨을 몹시 안 받으시는 것 같아요.

《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 (Overgrown Path) 》

팬미팅 시간은 1시간 반을 조금 넘겼습니다.
먼저 서희 씨의 설명을 곁들여서 세 편의 영상물을 감상했어요.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Overgrown Path)' 는 이번에 서희 씨와 호세 마누엘 카레뇨가 공연할 지리 킬리언의 안무작입니다. 두 분이 처음 파트너로서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고요. 서희 씨는 이 작품을 정말 힘들게 익혔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오신 선생님이 절대 영상물을 보지 못하게 하셨다네요.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작품이라 본인이 직접 한 스텝 한 스텝을 익혀야 한다는 뜻이셨대요. 야나체크의 음악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병으로 딸을 잃은 상황에서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소녀의 죽음을 표현하는, 서희 씨와 카레뇨가 출 파드듀가 사뭇 기대됩니다. 전체를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비록 이번 공연에서는 볼 수 없지만, 얼핏 본 남성 무용수들의 3인무에서는 두아토의 'Remanso' 를 연상케 하는 다이내믹함을 느꼈습니다.

'Born to Be Wild' 는 ABT의 발레리노 네 명을 조명한 영상으로, 서희 씨의 파트너인 카레뇨를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촌인 알리시아와 함께 춘 '디아나와 악테온', '백조의 호수' 가 기억에 남네요. 쿠바인들의 저 미친 테크닉이란…. 디아나의 푸에테도 거의 32회전 급으로 돌더군요. 쿠바에서 주역 발레리나가 되려면 앙디올 턴은 5~6바퀴쯤 돌아야 하고, 흑조의 그랑 알론제는 를르베로 소화해야겠다고 reina님과 웃음섞인 대화를 나눴어요. 아, 지금 쿠바에서 활동 중인 호세의 사촌 동생 (아마 호엘이었나요) 도 다음 시즌에 ABT에 합류할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서희 씨와 카레뇨는 어떤 작품을 함께 출지 고민했다고 하셨는데요, 카레뇨가 갈라에서 즐겨 추는 세 작품 - 디아나와 악테온, 돈키호테, 해적 - 중에서 결국 '해적'을 고르게 된 이유가 재미있었습니다. 서희 씨는 튀튀, 그 중에서도 붉은색보다는 보라/핑크색 튀튀를 입고 싶으셨다네요.

'해적(Le Corsaire)' 은 지금까지 출시된 ABT의 전막 영상물 중에서도 대표격이 아닐까 합니다. 켄트/스티펠/코레야/헤레라/말라코프의 올스타 총출동 캐스팅이지요. 다만 서희 씨가 직접 춤추는 영상을 볼 것이라고 기대했던지라 조금 실망했습니다. 갈라에서 해적 파드듀는 사골, 아니 단골 레퍼토리니까 굳이 유명한 DVD를 또 볼 필요가 있었나 싶네요. 건진 것은 서희 씨가 ABT 여성 무용수 중에서 줄리 켄트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 정도?

《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 Juliet) 》

그리고 질문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메모도 하신 reina님과 대조적으로, 전 정신줄을 놓고 고개만 끄덕였어요.
(후기가 부실한 걸 보고 다들 눈치채셨으리라 봅니다 *-_-*)

이번에 함께 공연할 김선욱 씨에 대한 생각.
UBC '호두' 파트너인 김용걸 씨의 부상으로 인한 연습 문제.
슈투트가르트와 ABT 중에서 ABT를 선택한 이유.
승급 (ABT는 주역-솔리스트-군무 3등급 체계) 에 대한 생각.
처음으로 주역인 줄리엣을 맡았을 때와 첫 공연 때의 심정.
앞으로 주역으로서 꼭 추고 싶은 작품.
무용수로서 자신의 장점.


대략 이 정도의 질문이 나왔는데…, 웬만한 답변은 연합뉴스뉴시스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물론 뒷이야기가 좀 더 있지만, 이건 팬미팅에 참석한 사람들만의 이야깃거리로 남겨 놔야겠지요. 그리고 Q&A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사인을 받으면서 작은 질문을 하나 했어요. 발레단 동료들이 서희 씨를 부르는 특별한 애칭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서희 씨의 답변은 재미있게도 'She' 였습니다. 이름의 철자가 남자(He)와 발음이 같다 보니, 여자라는 뜻에서 입단 초기에는 'She' 라고 불렸다고 하셨어요~.

공식적인 팬미팅은 이렇게 끝났고, 서희 씨가 기자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 reina님과 다른 분들께서 에투알 갈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셨어요. 갈라에 새로 초대될 커플은 어떤 무용수일지가 큰 화두였습니다. 약간의 암시는 받았지만 역시 공지사항이 뜰 때까지는 기다려봐야겠네요.

《 드네프르 강에서 (On the Dnieper) 》

+) 서희 씨의 Q&A 시간에, 뜬금없이 ㄱㄹㄱㅇㅍ가 ㅅㅁㅂ를 총애하는 이유를 상상했어요. 같은 음악이지만 춤추기 좋은 템포와 음악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템포는 분명히 다릅니다. 자신의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한 ㄱㄹㄱㅇㅍ는 발레에 '맞춰서' 음악 템포를 수정하는 것을 꺼릴 것 같아요. 헌데 무용 관객이 보기에 음악성이 부족한 ㅅㅁㅂ는 원곡의 템포를 바꿀 필요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춤추는, 편한 무용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

by 자하 | 2009/11/26 17:03 | 발레 | 트랙백 | 덧글(6)

토요 작품반 - 오데뜨 #1·2 (부제: 백조탐구생활)

백조, 인간 공주 몰라요. 인간 공주도 백조 몰라요.
사소한 것 하나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백조와 인간 공주.


클라스 일기 25회, 백조탐구생활 1·2편

#1

오늘은 처음으로 오데뜨 작품반을 듣는 날이에요.
지난번에 자기 에스메랄다 영상을 보고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긴 자하씨는 새롭게 각오를 다져요.
선생님이 먼저 '백조의 호수' 스토리를 실감나게 설명해 주셨어요.
역시 작년까지 무대에 계셔서 그런지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드디어 작품을 마킹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이런 우라질.
시작을 실제 안무보다 훨씬 쉽게 바뜨망-롱드잠으로 하는데도 다리가 90˚밖에 안 올라가요.
그동안 6시 포즈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요.
역시 발레리나와 민간인의 차이는 넘사벽인가 봐요.

바뜨망-롱드잠을 3세트 한 다음, 부레부레하면서 폴드브라를 두 번 하고, 백조 포즈로 숫수를 해요.
이 백조 포즈가 정말이지 시발롬이에요.
오른팔은 높이 올리고 왼팔은 아래로 내려요.
하지만 인간 공주처럼 앙오-앙바로 하면 시망이에요.
웬만한 폴드브라는 손목을 푹푹 꺾어줘야 백조 삘이 나요.
이때 어깨를 팔과 같이 비대칭으로 기울여야 해요.
그리고 얼굴이 정면을 바라보면 백조가 아니에요.
목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왼쪽 어깨를 확 내려서 목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늘려놓아요.
상체도 꺾어서 앞으로 살짝 내밀어줘요.

쁠리에 롱드잠을 하고 그랑 아라베스크를 해요.
오른팔이 얼굴에 붙을 정도로 높이 들어요.
다만 시선은 인간 공주처럼 위로 두지 않고 적당히 내리깔아요.
투스텝을 찍고 숫수를 해요.
손목을 교차시킬 때도 크로와제 방향을 지켜서 오른손이 앞에 나오게 해요.
다시 한 번 부레부레 하면서 백조 폴드브라를 두 번 해요.
팔이 위로 갈 때는 시선도 위로, 내려갈 때는 시선도 아래로 가요.
팔은 어설프게 올리지 말고 손목 등이 부딪칠 정도로 올려요.
하지만 어깨도 팔 따라서 올라가면 망하는 거에요.
어깨는 내리면서 팔은 올리라니.
역시 발레에는 편한 게 하나도 없어요.

시작 포즈로 돌아가서 손목 크로와제를 하고, 다시 처음 했던 순서를 반복해요.
그리고 이번에는 쁠리에 롱드잠 대신 쓰리스텝을 찍어요.
왼발-오른발-왼발 그랑 아라베스크에요.
맨날 까먹어서 엇박자로 나가요.
그 다음 스텝은 오른발-왼발-오른발 아라베스크에요.
이번에는 그랑으로 안 해도 되지만 대신에 여운을 남겨요.
사르르르 걸어가서 백조 포즈를 하면서 파세-숫수로 넘어간 후 폴드브라를 두 번 해요.

이런 젠장.
하루종일 순서 외우느라 느낌 내는 건 손도 못 댔어요.
이렇게 오데뜨 첫 수업이 끝났어요.


#2

클라스 없는 일주일 동안 밤을 네 번 새고 과자랑 닭이랑 짱개음식을 먹었더니 살이 1㎏나 쪘어요.
배 둘레에 햄을 두른 듯한 무용복 실루엣을 보고 급 우울해졌어요.
저번에 새로 지른 무용복은 다음 달에 입으라는 신의 계시인가 봐요.

이런 십장생.
첫날 배웠던 걸 다 까먹었어요.
선생님이 처음부터 전부 다시 가르쳐 주셨어요.

드디어 새 순서에 들어갔어요.
페르메-파이-부레부레-백조 아라베스크에요.
자하씨가 못하는 동작만 오질나게 많이 나와요.
사실 잘하는 동작이 없어서 전부 다 못하는 동작이라고 부른다는 점은 일단 외면해요.
부레부레는 상체를 앞으로 내밀면서 6번 발모양을 써요.
그리고 쁠리에를 할 때 손목을 크로와제로 교차하고 들어올릴 다리를 앞으로 길게 뻗어요.
날카로운 스피드로 자세를 바꿔요.
팔은 앙오로 올렸다가 손목을 꺾으면서 뒤로 휙 제껴요.
앞으로 뻗은 다리는 파세를 찍었다가 들어올려서 그랑 아라베스크를 해요.
목을 꺾어서 시선이 천장을 향하게 해요.

그지 깽깽이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세 개가 동시에 되는 법이 없어요.
평소에는 인간 공주를 못 하는데 왜 백조를 추려고 하면 인간 공주 팔동작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팔을 겨우 고쳤더니 이제는 다리가 시계추처럼 움직여요.
다리가 파세하는 법을 까먹었나 봐요.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이게 두 세트래요.

다음은 투스텝 하고 애티튜드 두 세트에요.
다른 건 어거지로 쉴드쳤지만 자하씨의 애티튜드는 본인이 봐도 병맛이에요.
백조는 무슨, 그저께 먹은 닭다리가 생각났어요.

폴드브라를 하면서 무대 구석으로 간 후, 반대쪽 방향으로 페르메부터 다시 해요.
이런 우라질.
반대로 하려니까 팔다리가 따로 놀아요.
혼을 담아서 오른쪽만 외웠더니 왼쪽이 바보가 되어 버렸어요.

좌절할 여유도 없이 다음 순서를 외워요.
투스텝 하고 애티튜드 턴 반 바퀴, 투스텝 하고 왼발 아라베스크에요.
마지막은 왼발 오른팔을 앞으로 해서 포즈를 취하면서 팔을 물결치듯 흔들어요.
이번에도 어깨를 확 꺾어서 객석에서 등이 보이게 해요.

오데뜨가 왜 콩쿠르에 안 나오는지 잘 알았어요.
발레에서 인간 공주는 팔꿈치가 몸 뒤로 가는 일이 절대 없어요.
전용도로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정확하게 움직여요.
하지만 백조는 날개처럼 팔을 한껏 뒤로 빼서 써야 해요.
나름 열심히 파닥거려 보지만 현실은 물결이 아닌 지진 L파에요.

다음 시간에는 자하씨가 제일 못하는 피케턴이 나와요.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요.

by 자하 | 2009/11/14 23:18 | └ 클라스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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